# 부동산 투자 지형도

# 정책을 읽으면 돈이 보인다.(정책에 맞서지 말고 적극 활용하라)

'정책에 맞서지 마라'는 격언이 있다. 아무리 똑똑한 투자자도 정책에 거스르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투자에서 승자가 되려면 정부의 정책을 잘 읽어야 한다. 즉 정책을 잘 할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부동산은 정책에 따라 움직이는 생물체이다. 주변에도 정책 흐름을 잘 타서 높은 투자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돛단배가 순풍을 이용하여 목적지까지 힘들이지 않고 도달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요즘 들어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 직접 개입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정책 변수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시장에서 정책 변수가 70~80%까지 차지할 때도 있다. 오죽하면 '부동산 가격은 정부에게 물어 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까? 정부 정책은 투자 결정에서 중요한 잣대가 될 수 밖에 없다.


 서울 강남에 사는 자영업자 000씨는 2003년 9월 소형주택건설의무화제도가 시행될 것이라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 뭔가 잡히는 '감'이 있었다. 강남권에 중대형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재건축을 통해 평수를 못 늘리게 하면 일반 중대형 아파트의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소형주택건설의무화 제도는 수도권 과밀 억제 권역에서 재건축을 할 때에 전체 건립 예정 가구수의 60%이상을 전용 면적 85㎡(25.7평) 이하의 국민주택으로 짓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이전에는 과밀 억제 권역의 300가구 이상의 단지만 전체 가구 수의 20% 이상을 60㎡(18평)으로 짓도록 되어 있었다.
 000씨는 투자처를 물색한 끝에 송파구 문정동의 올림픽 훼밀리타운 아파트를 골랐다. 1989년에 입주한 이 아파트는 105~224㎡(32~68평형) 4,494가구로 구성되어 중대형 중심의 대단지에 속했지만, 재건축 가능성이 적어서 값이 거의 오르지 않았던 곳이다. 000씨가 산 아파트는 142㎡(43평형)이었다. 당시 시세는 6억 9,000만원이었다. 000씨의 판단은 주효했다. 이 아파트는 대책이 나오고 나서 두달도 되지 않아 8억 5,000만원으로 1억 6,000만원이나 껑충 뛰었다.000씨는 재건축을 누르면 일반 아파트값이 풍선 효과 때문에 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고 미리 움직였고 결국 큰 시세 차익을 얻었다.
 
000씨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의 흐름을 잘 파악하여 투자에 성공한 사람들은 많다. 외환 위기인 1998년 6월 정부가 주택경기를 살리기 위해 소형주택건설의무화제도를 폐지했을 때에 발빠른 투자자는 서울이나 수도권 소형 아파트를 주목했다. 건설업체들이 소형 아파트는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짓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값이 오를 것이라고 본 것이다. 실제로 소형주택건설의무화제도가 풀린 이후에는 소형 아파트 공급이 격감했다. 당시 20평형대 아파트를 샀던 투자자는 2000~2002년 당시 중소형 아파트값이 크게 올라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 외환 위기 당시 분양권 전매 제한이 전면 폐지되었을 당시에도 분양권에 투자해 돈을 번 사람들도 많았다. 정부의 정책이 미치는 시장 영향을 정확히 짚어 내어 투자 포인트를 잡은 것이다. 2008년 말 정부가 수도권에 투기과열지구를 대거 해제함에 따라 민간택지와 일부 공공택지에서 분양권 전매가 허용되었다. 2003년 이후 5년 만에 분양권 전매 시장이 열리는 셈인데 완공 전이라도 분양권을 사고팔 수 있는 만큼 수요자들은 관심을 가져 볼만하다.
 노태우 정부 시절, 경기도 파주나 김포 등의 접경 지역에 투자를 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 정책에 이들 지역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김영삼 정부의 준농림지 규제 완화 때에도 수도권 도로변의 논밭을 산 사람들 역시 큰 부자가 됐다. 김대중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를 본격 추진했을 때에는 대도시 주변의 그린벨트 내 땅 투자자들이 상당한 수익을 챙겼자.
 노무현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중과세하자 그 파장을 예상하고 미리 움직여 부자 대열에 오른 사람들이 많았다. 양도소득세를 무겁게 매기면, 외곽 지역 주택을 처분하고 똘똘한 중대형 한 채를 보유하려는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의 흐름을 읽지 못해 손해를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강원도나 충청권, 제주도에 있는 수익형 펜션에 투자하거나 펜션 부지를 매입한 사람들이 대표적인 예다. 10% 이상의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는 광고를 믿고 수익형 펜션에 묻지마 투자를 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체 면적 45평 이상의 펜션에 숙박업 등록을 의무화한 농림수산식품부의 규제가 시행되면서 상당수의 수익형 펜션 업체들이 부도가 나거나 공사를 중단했다.
 시장이 지나치게 뜨거우면 이를 진정시키기 위한 정부의 규제가 반드시 뒤따른다. 수요층이 두텁지 않은 틈새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되어 있을 때에는 일단 한 발 물러서는 것이 좋다. 실수요가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금세 시장이 얼어붙고 규제가 풀리지 않는 한 되살아나기도 어렵다.
 정보가 늦을 수밖에 없는 일반인들이 정책보다 앞설 수는 없다. 특히 정부 정책 가운데 미시적인 내용까지 내다보고 일일이 대처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시장의 큰 흐름을 바꿔놓을 거시적인 내용은 일반인도 파악할 수 있다. 좀 늦더라도 정책의 큰 흐름을 활용하면 적어도 손해 볼 일은 없다. 주택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 선거가 집값을 끌어 올린다.

- 대통령 선거나 국회 의원 선거가 잇는 해다 되면 집값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거 때에는 돈이 ㅁ낳이 풀려 인플레이션 헤지 수요에 따른 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는 논리 입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돈 선거 풍조가 사라지면서 이런 경향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 대통령 선거 때의 집값 통계를 보면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된 1992년에는 전국의 집값이 전년 말 대비 5%내렸습니다. 15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1997년에는 2% 상승했고 2002년에는 16.4% 나 뛰었습니다. 1992년 당시 집값이 하락한 것은 '200만호 공급 쇼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1997년은 5년간의 조정을 끝내고 상승세로 돌아설 때이고 2002년은 외환 위기 건설업체들의 부도로 집을 짓지 않아 수급 불안으로 집값이 급등했던 때였습니다. 대선 재료보다는 당시 경제 여건이나 주택 시장 수금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수 있습니다.
 물론 선거가 국지적으로는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후보들이 내세운 개발 공약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 수도 공약입니다. 당선된 이후, 2003년 충남 지역의 땅값은 4.8%올라 전국 평균을 옷돌았습니다. 연기나 공주 지역의 일부 땅값은 배 이상 오른 곳도 많았습니다. 2001년 6월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청계천 복원 공약을 내건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서 청계천 일대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기도 했습니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당선된 후보가 어떤 공약을 내놓느냐에 따라 단기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부동산은 실물결기, 금융 시장, 주택 수급, 정부 정책에 무게를 두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 부동산에도 기본적인 투자 흐름이 있다.
- 부동산에 투자하여 돈을 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간단할 것 같지만 일반인에게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부동산을 이용하여 돈을 벌려면 부동산 시장만의 독특한 속성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 자본이 확대 재생산되는 지역을 눈여겨보되 변동성에 유의하라
우선 돈이 모이는 지역, 즉 자본의 확대 재상산이 가능한 지역ㅇ니지 눈여겨봐야 합니다. 부동산의 가격은 결국 돈의 흐름이 좌지우지합니다. 돈이 많이 모이는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오르게 마련입니다. 자본은 항상 움직입니다. 이정한 지역에서 응집했다가 불가사리처럼 외부를 향해 뻗어나갑니다. 부자들이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특정 지역의 땅값이나 집값이 오르는 것은 '동네 자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드시 외부의 자금이 유입되어야만 합니다.
 상승장 때 아파트를 산다면, 실수요보다는 투자수요가 ㅁ낳은 지역이 낫습니다. 자본의 힘이 실수요보다는 투자 수요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투자 수요는 동네 수요보다는 지역밖 수요가 강합니다. 타지역 사람들까지 욕심을 낼 정도의 부동산이면 일단 투자 가치가 있는 부동산 가능성이 큽니다. 국지거 수요 단계를 넘어서야 가격이 많이 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간혹 일부 투기꾼들이 장난을 쳐서 시장을 왜곡시키는 경우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부동산 가격은 실수요보다는 투자 수요와 비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수요에다 투자 수요까지 겹친 곳이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2006년, 인천 검단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자 주변의 아파트값이 하루 아침에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인천 지역 주빈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검단 신도시 개발 계획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인천광역시가 검단 신도시를 개발하는 내용의 2020년 도시 기본 계획을 확정하여 건설교통부에 이미 승인을 얻어 놓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값은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개발 재료가 매스컴을 타고 전국으로 알려지자 값이 크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국지성을 띠었던 재료가 전국화한 것입니다. 강남구 대치동 타워팰리스나 은마 아파트값이 바싼 것도 시골 농부까지 알 만큼 유명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청와대는 몰라도 은마 아파트는 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2004~2006년 지방에서 토지보상자금을 받은 상당수의 사람들은 타워팰리스나 은마 아파트를 사들였다. '아파트를 살 때에는 택시 운전 기사가 아는 아파트를 사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반 사람에게 널리 알려진 아파트는 그 만큼 이름값을 합니다. 마케팅 기법 중에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화젯거리를 만들어 소비자의 이목을 현혹시키는 수법으로 판매량을 닐리는 것입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어떤 이슈에 의해 그 상품이 ㅁ낳이 알려지면 그 만큼 상품 판매도 늘어납니다. 아파트도 유명세를 타는 곳을 사야 값이 잘 오르고 팔기도 수비습니다. 언론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슈 지역은 타지의 투자자도 항상 눈독을 들입니다.
 다만 하락장일 때에는 이슈 지역의 낙폭이 다른 지역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점에 유의 해야 합니다. 외지인 투자 수요에 의해서 지나치게 가격이 부풀려저 고평가현상이 나타날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상승기에 분위기에 들떠 이들 지역에서 고점에 '묻지마 투자'를 하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입지 못지 않게 가격도 매수 판단의 중요 잣대가 되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대한민국 부동산은 대폭락하지 않았다. 강남, 서초, 송파, 목동, 분당, 용인, 평촌 등 이른바 버블 세븐을 위시로한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한동안 상당히 하락한 일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대한민국 부동산 가격은 폭락하지 않았다. 폭락은커녕 일부 지역의 경우 오히려 대폭 상승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니, 정말 폭락이 없었다고 ? 못 믿겠다고 ?

머리말에서 말했듯, 우리가 흔히 주고받는 부동산 이야기에는 사실 수많은 억측과 오해가 교차하기도 하고, 불합리한 가정이 전제되기도 하며, 무엇보다 주술적 예언이 전망이라는 탈을 쓰고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자칫 우리 스스로에게 대한민국의 경제 흐름을 잘못 읽게 하고, 때로는 잘못된 판단을 불러일으키며, 그로 인해 손해를 보게 하기도 한다.

사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판단만큼 개인, 또는 한 가정의 자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또 있겠는가? 그러나 경제는 도덕이나 종교가 아니다. 그러니 이제 좀더 냉정하게, 대한민국의 부동산이 정말 폭락하지 않았는지 찬찬히 살펴보자.

다음은 한국감정원에서 발표하는 아파트 매매 가격 동향을 연간 단위로 표시한 것이다. 전국, 수도권, 서울의 세 가지 기준으로 그래프를 그려봐도, 2007년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주택가격 하락의 흐름을 확인하기란 쉽지가 않다. 오히려 연간 기준으로 전년 대비 전국 아파트 가격이 하락한 해는 2013년이 유일하다. 아파트 가격을 기준으로 보면 2007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우리나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제공하는 글로벌 부동산 가격지수를 보아도, 대한민국의 부동산 가격은 매우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부동산 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락했다가 점차 회복되어가는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큰 등락 없이 꾸준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30%가까운 하락을 경험한 미국이나 유럽의 사정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물론 아직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세계는 여전히 경기부진과 고실업에 시달리고 있으며, 상당수의 국가가 엄청나게 불어난 국가부채로 고통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대폭락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

앞으로의 일을 누가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겠는가? 미래에 닥칠 상황을 예언하는 것은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일단 질문의 방향을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에 대한 것으로 바꿔보자.

왜 대폭락은 오지 않았는가?”

나는 이 질문이 현재 시점에서 대한민국 부동산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핵심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지난 수년 동안 이어져온 부동산 담론에 담겨 있는 수많은 오해와 억측을 드러내고, 대한민국 부동산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당시 다른 선진국이 겪어야 했던 대폭락을 피할 수 있었을까? 그 원인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이제 그점을 살펴보자.

한국은 대폭등이 없었다.

산봉우리가 높아야 골짜기도 깊을 것이다. 역사상 대부분의 부동산 폭락 사태는 직전의 대폭등 이후에 벌어졌다. 가장 최근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의 폭락도 그렇고, 그보다 먼저 일어난 1990년 일본 부동산의 버블 붕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에 비해 한국은 2000년대 이후로 대폭등이라고 할 만한 상승이 없었다.


주택가격 상승률, OECD 평균의 절반

지난 참여정부 시절(2002~07) 허구헌날 부동산이 폭등하고 있다며 이어지던 그 수많은 기사들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대한민국 부동산은 꾸준히 가격이 오르기는 했지만, 경제학적으로 대폭등이라고 할 만한 상승을 한 것은 아니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언론이 입을 모아 그렇게 성토했던 부동산 가격은 사실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갔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어떤 기준으로 들여다보더라도 명확하다.

다음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의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OECD 주요 국가의 실질 주택가격 상승률을 보여주는 그래프이다.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흘러 넘치면서 글로벌 부동산 경기가 대호황을 경험했던 시기이다.

그 무렴 OECD 국가의 평균 실질 주택가격 상승률은 무려 42%를 기록했으며, 특히 버블이 심각했던 스페인은 심지어 90%가 넘는 실질 상승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의 실질 주태가격 상승률은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한 21%였다.

앞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한국보다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낮았던 국가는 일본이나 독일 정도가 전부였다. 일본과 독일의 부동산 가격이 안정적이었던 이유는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두 나라는 심각한 불경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알다시피 1990년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로(약간의 변동은 있었지만) 꾸준히 침체를 기록하고 있었다. 독일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동서독 통일의 후유증으로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었고, 당시는 유럽의 병자라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던 시기였다. 독일이 부흥하게 된 것은 2002년부터 시작된 노동 시장 개혁 프로그램인 하르츠 개혁의 효과가 발생하기 시작한 2005년 이후의 일이다. 이전가지 독일은 경제성장률이 3%미만, 실업률이 10%대에 육박하는 불경기를 오랫동안 거쳐오고 있었다.

한국 부동산, 왜 폭등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한국은 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지 않았을까? 한국도 독일이나 일본처럼 불경기였기 때문일까?

아니다.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은 어떤 경제지표를 들이대더라도 훌륭했다고 평가받을 수준이었다. 카드사태가 있었던 2003년을 제외하고, 2002~05년 동안 매년 경제성장률은 4~5%를 기록했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었으며, 조선업은 세계1위를 굳히고 있었다.

한국의 1인당 GDP200211,257달러에서 2007년에는 23,103달러를 기록했다. 5년 만에 1인당 국민소득이 2배나 넘게 올랐던 것이다. 이만한 오황이 어디 있었겠는가?

2000년대 초중반의 한국 경제는 이처럼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버블기와 매우 닮아 있었다. 이 시기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보면 세 가지 면에서 유사점을 보인다.

첫째, 대규모 경상주시 흑자를 통해 국내로 돈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이 시기 일본과 한국은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가 연평균 2%대에 이르렀다.

둘째, 경제성장률이 4~5%대를 기록하면서 충분히 높았고 실업률도 완전고용에 가까웠다. 특히 일본은 버블 시기에 2%대의 기록적으로 낮은 실업률을 기록하던 참이었다. 한마디로 최고의 호황기였다.

셋째, 양국의 금리는 모두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일본은 부동산 버블이 한창이던 1987~892.5%대의 낮은 기준금리를 유지했고, 이는 버블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경기 호황기에는 보통 물가도 크게 뛰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일 양국은 두 시기에 물가상승률이 매우 낮았다. 이렇게 물가에 대한 부담이 없다면 금리도 낮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2000년대 초중반의 한국도 금리는 꾸준히 낮아지는 추세였다. 200254.25%를 기록했던 기준금리는 2004113.5%대까지 낮아졌다.

이 세 가지 조건은 모두 시장에 돈이 흘러 넘치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일단 무역을 통해서 외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오면 외화 소득이 늘어나게 되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실업률이 낮아지면 임금이 오르고 가계소득이 늘어나며 시중에 돈이 많아지게 된다. 여기에 금리까지 낮았으니 사람들이 돈을 쉽게 빌리게 되고, 시장에는 돈이 흘러 넘치게 된다.

이렇게 돈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물건을 사게 마련이고, 큰돈이 많아지면 비싼 물건을 사게 될 것이다. 결국 시장의 돈과 투자심리가 자연스레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당시 한일 양국은 시장에 돈이 많아질 요건을 갖추었다. 하지만 일본은 망국적인 부동산 버블과 폭락을 겪었고, 우리는 OECD 주요국 중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관리한 나라가 되었다.

그렇다면 유럽과 미국의 부동산이 그렇게 폭등, 또는 폭락하던 바로 그시기에 한국은 어떻게 부동산 폭등과 폭락을 피할 수 있었을까? 이제 이 부분을 좀 더 들여다보자.

공급 확대 정책

당시 언론은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급 확대인데, 정부가 이를 도외시하고 수요 억제 정책에만 열을 올린다는 식의 비판을 많이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급 확대 정책도 함께 꾸준히 추진되었고, 이에 토건족 정부라는 식의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정부는 수도권 일대에 공공택지를 꾸준히 공급하며 국민임대주택을 지어서 보급했고, 저소득층이나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 대한 금융지원을 늘려나갔다.

역대 정부의 주택공급량을 비교해보면,김영삼 정부는 5년간 연평균 62만 호, 김대중 정부는 연평균 45만 호, 참여정부는 53만 호, 이명박 정부는 45만 호를 기록했다. 물론 이런 주택공급량이 적절했는지는 시장의 상황과 국민주택보급률 등 여러 변수를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절대량으로 보아 당시의 주택공급이 모자랐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거래 투명화 정책

참여정부는 부동산 폭등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거래 투명화 정책을 폈다. 당시에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지만, 장기적으로 시장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이었다. 부동산 거래가 차명거래 등으로 왜곡되지 않아야 시장이 공정하게 운영될 수 있고, 정부의 세금정책도 제대로 실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투명화를 위한 조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20058.31 부동산 대책에 포함된 것으로 실거래가 신고를 의무화하고 이를 등기부에 기재하게 한 것이다. 9.31. 대책은 종부세나 양도세 강화 등 세금문제에서 주목을 많이 받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 실거래가 의무화 조치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만큼 장기적으로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던 것이다.

당시 참여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집대성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20058.31 대책의 내용을 표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부동산 가격 안정과 시장 기능 회복을 위해 정부가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느낄수 있을 것이다.

정부정책을 보는 눈

정부정책에 올라타라

제가 아마 과거 조선시대의 호조판서를 포함해서, 역대 재무 책임자중 돈을 가장 많이 써본 사람일 것입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했던 발언이다. 안 그래도 환율정책이나 대운하 사업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던 강만수 장관은 이 발언으로 그야말로 쏟아지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정치적으로는 부적절한 발언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그렇게 부적절한 발언이었을까? 경제 운영을 책임지고 있던 장관의 개인적인 소회라면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만한 발언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도 그때에는 거칠게 비난한 바 있었음을 고백해둔다. 하지만 당시의 위급한 경제 상황에서는 정말 원 없이 돈을 써서라도경기를 떠받쳐야 할 정부의 역할이 필요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때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자. 2008914일 세계 5대 투자은행중 하나였던 리먼 브라더스가 결국 파산했고, 이후 세계 금융 시장은 공황상태로 빠져들었다. 다우지스는 12,000선 수준에서 20091월에는 7,000선까지 급락해 거의 반 토막이 났고, 세계 경기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위기는 한국에도 그대로 이어져 외국인자금이 대거 이탈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해외발 공황의 모습이 진행되던 때였다. 게다가 이런저런 정책 실패가 이어졌다. 키코(KIKO)사태로 인해 멀쩡한 중소기업들이 외환관리 실패로 무너져 내렸고, 정부의 경솔한 외환시장 개입 발언으로 달러화 매도 사태가 벌어졌으며,이를 막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헐어서 도시락 폭탄이라는 이름으로 외환시장에 강하게 개입했다. 이 와중에도 경제위기는 이어졌고, 어쨌건 정부는 상황을 수습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었다.

경제성장률의 추이를 보면 그 무렵의 경제 상황을 단적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084분기부터는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률로 떨어졌고, 20092분기까지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 정도의 경기침체는 경제성장률이 -5%수준으로 떨어지던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서는 매우 양호한 수준이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경제적 고통이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경제성장률이 이런 수준이니 다른 경제지표들도 엉망진창이었다. 특히 설비투자 감소분은 매우 심각해서 20084분기와 20091분기에는 전분기 대비 각각 -8.4%-9.6%를 기록했다. 2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 10%대의 감소율이라면, 2분기 만에 기업투자가 20%나 줄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은 크게 두 가지다. 통화정책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하거나 재정정책으로 적자 재정정책을 펴는 것이다. 이것도 상황의 심각성에 비추어본다면 매우 강력하게 추진되어야만 했다. 정부는 이런 위기를 충분히 넘길 만한 힘이 있다는 것을 시장에 보여주어야 했고, 실제로 돈을 풀어 경기를 자극해야만 했다. 한국이 어떤 경제정책을 폈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정부정책의 시그널

첫째, 한국은행은 과감한 통화정책을 시행했다. 20089월에는 기준금리가 5.25%였는데, 20092월까지 2%로 급속도로 인하했다. 이러한 통화 확장정책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져서 20176월 현재 1.25%대를 유지하는 중이다.

물론 이런 통화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나라가 시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도 이런 추세에 발맞추어 교과서적으로 확장적 통화정책을 강력히 시행한 점은 분명 평가받을 만하다.

둘째, 한국 정부는 강만수 장관의 발언처럼 원 없이 돈을 푸는 적자재정 정책을 펼쳤다. 당장 사고가 터졌던 20084분기 4.6조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했고, 2009년 적자 재정정책을 펴며 상반기에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입했으며, 하반기에는 역대 최고의 추경예산(28.4조원)을 편성하여 적자 재정정책의 효과를 증대시켜나갔다.

물론 이러한 과감한 적자 재정정책은 대운하 사업 등에 대한 국민적비판과 맞물려 인기가 없었다. 또한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던 시점에서 정부가 이렇게 건설토목사업에 재정을 집중하는 것은 또다시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인위적 경기부양책이라는 비판도 거셌다.

하지만 국가 경제 전체가 금융위기의 후폭풍에 휘말려서 꺼져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아울러 부동산 시장도 언제든 가격 급락의 위험성이 남아 있던 시점이었다. 다시 말해 인위적 경기부양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했어야 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정부정책의 양면성

결국 한국은 중국과 더불어 2008년 금융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탈출한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중국이 엄청난 경기부양책을 시행하며 각종 중간재 소비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한국의 수출도 증가했다. 또한 기업은 자동차와 휴대폰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상품 경쟁력으로 불황기를 오히려 기회로 전환시킨 전략이 성공했다. 그리고 세계 각국이 극심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조한 것이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 정부의 과감한 재정정책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는 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에 연간 GDP4%이상의 재정을 추가로 집행했다. 이러한 적자 재정정책은 경제위기에 대한 교과서적인 처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당시 한국 정부의 경제정책을 적자 재정정책을 썼으니 잘했다라는 식으로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고 말아서는 안 된다.

20세기 초반 케인스가 말한 것처럼, 적자 재정정책은 그냥 땅만 파는 것이라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식으로 거칠게 접근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만일 재정을 1억원을 투자한다면 어느 정도의 경기부양 효과가 밠갱하는가 하는 승수 효과를 따져보아야 한다. 이왕이면 재정투자분보다 효과가 큰 것이 훨씬 더 좋은 정책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대운하 사업을 비롯하여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온갖 국책사업들이 재정정책이라는 탈을 쓰고 시행되었다. 사실 이과정에서 엄청난 돈이 풀린 사업들은 흥청망청하는 분위기마저 있었다. 과거 세계적으로도 매우 건전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대한민국의 재정은 이제 적자구조로 정책되고 있으며, 국가부채가 우려스러울 정도로 급격히 늘어났다.

당시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급박하게 진행된느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경기를 부양해야 했고, 이를 위해 정부는 과감하게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써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반면 이 과정에서 국론의 분열로 인해 국가적 통합이 크게 저하되었고, 비용 대비 측면에서는 효과가 의문스럽다. 게다가 정부 지출이 효과가 별로 없는 분야에 투입되는 부작용도 함께 낳았다.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

정리해보자.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미국과 유럽의 여러 선진국들이 모두 부동산 폭락 사태를 맞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재정 여력을 완전히 소진해버렸고, 민간의 소비는 위축되었으며, 기업의 고용이 얼어붙으면서 실업률이 치솟았다. 물론 우리 경제에도 위태로운 상황이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아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완만한 굴곡으로 위기를 넘겨왔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부동산 대폭락에 대한 경고를 계속해서 접하게 되었고, 그러한 경고는 지금도 여전히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질문하게 된다. 지금까지 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가장 쉽게 답하자면 정부가 인위적으로 부동산 경기를 떠받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대답에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정도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부동산 시장을 떠받치지 않은 국가가 어디에 있느냐?”고 말이다.


부동산이 대폭락하지 않은 세 가지 이유

부동산 시장이 대폭락하지 않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일반의 믿음과는 달리 한국은 부동산 대폭등의 시기가 없었다. 실질 주택가격 상승률이 OECD평균 상승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를 대폭등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6년간 전국 평균 주택가격이 20%남짓 올랐다고 이를 폭등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둘째,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부동산이 대폭등했는데, 세계화된 시대에 우리만 이를 피할수 있었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 반대론자들의 조롱을 참으면서 꾸준히 일해온 참여정부의 공일 것이다.

셋째, 위기 상황이 벌어진 시점에서 과감한 통화정책과 적자재정 정책을 폈다. 물론 그 조치들이 정치적으로 악용된 면이 있었고,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한 점도 있었다. 이는 분명 비판되어야 할 지점이겠으나, 경제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였다는 것은 사후적으로 충분히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일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1980년의 후반의 일본뿐만 아니라 2000년대 초반 세계 부동산 대호황기에 각국 정부는 제대로 된 부동산 가격 안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자산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소비 증가 효과를 충분히 즐기고 싶어 했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미국이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20028월 캔자스시티의 FRB심포지엄의 개회사에서 시장의 우려에 대해자산가격 붐을 방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붐이 붕괴할 때 후유증을 완화하고 다음 확장기로 쉽게 전환할 수 있도록 할 수는 있다.”라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자산가격 상승을 방치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를 맞게 된다.

1990년대 후반의 일본과 2000년대 중반의 미국은 거의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고, 거의 비슷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은 어떤 정책적 잘못을 저질렀을까? 핵심은 소비자물가가 안정되어 있다는 이유로 자산가격의 급등 상황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두 나라 정책 당국은 모두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이상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기준금리 인상 등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과 일본의 중앙은행은 금리란 소비자물가가 너무 높을 대 안정화시키기 위해 인상하는 것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에 매우 충실했다. “물가가 매우 안정적인데 자산가격만을 잡기 위해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과감하게 내놓지 못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주류경제학 이론에 충실했지만, 현실은 경제학 이론보다 더욱 변화무쌍했고 무자비했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 시장의 변동은 투자자들의 손실이나 이익으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 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중요한 변수로 떠 오르기도 한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필요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상황을 방치한다면, 우리 또한 1990년 일본과 2007~08년 미국의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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