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폭락론과 청산주의

앞 장에서 이야기했듯, 부동산 대폭락이 올 것이라는 어두운 예언은 지난 10년간 우리 경제에 지속적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일부 평론가들은 부동산 대폭락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것을 넘어, 대폭락이 오면 오히려 한국 사회의 온갖 부조리들이 모두 청산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선대인, 심영철의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를 보자.

거품이 붕괴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게 서민이다라고 떠드는 세력들은 왜 그렇게 말할까?

선의로 해석하면 거품 붕괴 시 경제적 충격이 동반되므로 서민들의 삶이 힘들어진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렇지만 거품이 커질 때부터 이미 서민들은 집값 상승으로 인한 상대적 소득 하락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내수 위축, 임대료 상승, 양극화 심화 등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그렇게 거품을 키워 서민들의 삶을 잔뜩 힘들게 해놓고도 여전히 거품은 꺼지면 안 된다고 한다면, 계속 거품을 키우자는 말밖에 안 된다. 현재의 거품이 유지되거나 더욱 부풀어 오르는 상황에서는 결코 서민들의 삶이 개선될 수 없다.

거품이 꺼져야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민을 비롯한 가계 전체가, 그리고 한국 경제 전체가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돌아갈 수 있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이 정말 선의로 그런 주장을 했다고 한다면, 실제로는 서민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사실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것이기도 한데, 경제학에서는 이를 청산주의라고 한다.

청산주의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이런 사고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그 논리구조가 매우 윤리적인 색채를 띠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문제에는 어떤 부도덕한측면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벌로써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도덕함을 징벌하고 새로운 도덕적 체계를 세워나가야 할 것이라는 논리구조이다.

얼핏 듣기에는 굉장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경제구조에 깃든 부도덕을 씻어내고 착하게 살자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뭔가 좀 이상하다 싶어도, 반론을 하지니 착하게 살자는 사람 앞에서 악하게 살아도 된다고 대꾸하는 격이 될까 싶어, 더 이야기 하지 못하고 말문이 막혀버리는 식이다.

그러나 경제적 문제와 윤리적 문제는 다른 문제다. 설사 윤리적으로 부도덕한 문제가 있다 치더라도, 그 윤리적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반드시 경제적 문제가 모두 해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윤리적 방법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경제 문제가 애초에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경제에 얽힌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과 이해관계는 단순한 윤리적 잣대로써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물론 우리 사회의 수많은 부조리와 부도덕한 관습은 분야를 막론하고 해결해야겠지만, 도덕적인 접근만으로 산적한 문제들을 모두 적절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공황과 청산주의

우리는 청산주의가 극단적으로 선명하게 나타난 역사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1929년 미국 대공황 때의 일이다. 그해 10월 미국 증시는 대폭락을 시작했다. 다우지수는 전 고점에 비해서 무려 48%가 폭락한 이후 등락을 거듭하면서 결국 1932년까지 89%가 폭락했다. 100달러짜리 주식이 불과 3년 만에 11달러가 된 셈이다. 이 사태는 주식 시장의 붕괴로 끝나지 않았고,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공황으로 몰아넣었다.

그냥 건조하게 숫자만 나열해도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29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의 생산은 46%, 투자는 90%, 소비는 41% 감소했으며, 실업률은 19293.2%에서 193324.9%로 급증했고, 소비자물가지수는 25% 하락했다.

수치상으로는 당시의 실업률이 25%라고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은 50%가 넘었을 것이라고 추산하기도 한다.

둘 중 하나는 일자리가 없는 셈이다. 이런 숫자들을 모아서 한마디로 줄이면 그야말로 경제적 지옥도라고 하겠다.


맬런 독트린

대공황 때 허버트 후버 대통령 내각의 재무부 장관은 앤드루 맬런이라는 인물이었다. 엄청난 부자이기도 했던 그는 대공황 전까지 자유주의 원칙에 입각한 경제 운용으로 명성이 높았다. 이런저런 정책으로도 유명하지만, 그가 아직까지도 역사책에서 계속 인용되는 것은 당시에 후버 대통령에게 했다는 다음의 발언 때문이다.

노동자를 청산하고, 주식을 청산하고, 농부를 청산하고, 부동산을 청산해야 합니다. 썩은 시스템을 쓸어버립시다. 사치스러운 생활양식들이 무너져내릴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도덕적인 삶을 살 것입니다. 가치는 조절될 것이며,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물러나고 진취적인 사람들이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이 발언만큼 청산주의를 선명하게 표현한 예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2011331일자 뉴욕타임스칼럼에서 이를 멜런 독트린이라고 한 바 있다.

멜런 장관이 했던 발언의 의미는 명확하다. 그동안 노동자들이 고임금을 받아왔고, 주식은 고평가되었으며, 농부들은 비효율적이었고, 부동산에도 거품이 잔뜩 끼어 있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들이 청산되어 모든 이들이 좀 더 검소하고 성실한 도덕적인 삶을 살게 되면 경제가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검소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맬런은 가장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당시 미국 소득세 랭킹 4위를 기록했던 대부호였다.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철강왕 카네기, 석유왕 록펠러, 철도왕 밴더빌트 같은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했던 20세기 초반의 역사적인 부자이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했다니, 그 의도가 아무리 옳다 해도 지금의 우리가 듣기에도 좀 약이 오를 수밖에 없다.

멜런 장관의 발언은 언뜻 듣기에 가슴을 울리는 힘이 느껴진다. 더욱이 이 발언이 나왔던 때는 바로 1931년이다. 미국의 1920년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퇴폐적이고도 사치스러웠던 시대 중 하나이다. 이 시기를 일러 포효하는 1920년대라고도 하고, ‘도금시대라고도 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의 회복기로서 경제성장률이 높았으며, 20세기 초반의 온갖 혁신적인 발명이 이어지면서 재즈와 위스키가 흐르는 흥겹고도 낙관적인 시대였다.

그런데 맬런은 1920년대의 사치스러운 분위기가 1930년대의 대공황이라는 고통을 낳았고, 그러니 과거의 도금이 벗겨지는 고통을 참고 이겨내면 더욱 건강한 경제가 될 것이라고 한 셈이다. 얼마나 그럴듯하며 도덕적인가? 그런데 이런 도덕적 사고방식이 실제로 경제에 적용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말 지난 시기의 부도덕한 과잉이 모두 청산되고 나면 건강한 경제 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을까?

맬런 장관은 말로만 청산주의를 외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정책으로도 자신의 신념을 실천했다. 당시 대공황 3년째인 미국의 재정은 1931년까지도 흑자를 기록했다. 당시 대공황 3년째인 미국의 재정은 1931년까지도 흑자를 기록했다. 공황의 여파로 극심한 경기침체가 닥치고 경제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있었음에도, 정부는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시중에 돈을 풀기는커녕 거두어버렸다. 다시 말해 오히려 공황을 더욱 심화시키는 쪽으로 흑자 재정정책을 폈던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 결과를 잘 알고 있다. 미국의 공황은 더욱 심각해졌고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 전 세계는 10년이 넘도록 경기침체로 고통을 받게 되었다.


청산주의는 진짜 청산을 부른다

청산주의의 진짜 문제는 현실에서 통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통해서 문제이다.

불황 국면에서 청산주의적 정책을 취하면 확실하게 청산의 결과가 나온다. 기준금리를 올리고 대출을 줄이고 재정을 움켜쥐면 경제는 너무나 확실하게 청산이 된다. 과거의 과소비나 투기적 태도 따위는 한방에 날아가버린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성공이다. 경제가 망해가는데 더망하라는 정책을 취하면 더 망하는 것은 확실하다. 불황을 탈출하는 것이 어렵지, 불황을 심화하는 것이야 뭐가 어렵겠는가?

하지만 청산된 이후에 올 것이라는 건강한 경제가 과연 언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케인스의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라는 말처럼, 언젠가는 건강한 경제가 다시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이고, 더 큰 문제는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90년에 불황이 시작된 일본은 2016년까지도 청산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맬런 장관이 말한 더 도덕적인 경제는 아직도 오지 않고 있다.

일본의 실수는 1980년대의 버블을 방치한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실수는 1990년대에 그 버블을 끄기 위해 동원했던 무지막지한 금융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19903, 일본 정부는 부동산 대출 총량 규제 정책을 전격적으로 도입했다. 이 정책으로 인해 신규 부동산 대출이 전면적으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게다가 19895월부터 19908월까지 겨우 1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2.5%에서 6%까지 급속도록 올려버렸다.

비유하자면, 최고 속도로 질주하는 덤프트럭이 급커브에서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아버린 셈이다. 물론 트럭의 속도는 0으로 줄어들었지만, 그 트럭이 전복해버린 것이 문제였다. 이런 정책 실패의 영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초장기 불황을 겪고 있으며, 그동안 시민들이 겪어온 불황의 고통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우리옆의 대폭락 경험

폭락론에 던지는 두 가지 질문

혹자는 지금 대한민국의 부동산 가격은 명백한 거품이며, 이로 인해 가계는 주거 부담을 과중하게 지게 되고, 기업도 이윤 압박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부동산 가격은 한국 경제가 도저히 지탱할 수 없는 수준이기에 이후 필연적으로 대폭락 사태가 닥칠 것이며, 이를 계기로 한국 경제도 불로소득이 일소되고 건강한 생산력이 유지되는 시스템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일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주장의 근거들도 풍부하다. 무엇보다 실제로 우리가 살 집값은 너무 비싸고, 이를 통해 불로소득을 올리는 이들의 횡포는 전반적으로 너무 가혹하다. 그리고 이것이 유지되는 현재의 시스템은 불합리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좀 더 냉정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주장의 논점을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보자.

첫째,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명백한 거품 수준인가의 여부

둘째,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거품 상태라고 가정하더라도, 대폭락이 일어난다면 정말로 우리 사회의 온갖 부조리들이 청산되는 기회가 될 것인가의 여부

한국 부동산 시장이 거품이냐의 문제는 다음 장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대폭락이 일어나면 부동산 거품으로 인한 온갖 부작용들이 해소되면서 우리 경제의 체질이 더욱 건강해질 것이라는 예상을 정말로 믿을 수 있을지 살펴보자.


청산주의의 허상

결론적으로 말해, 이런 주장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무책임하다.아주 간단한 반례를 들어보겠다. 전 세계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음에도 경제가 안정적으로 잘 성장한 예를 찾을 수 있을까? 실제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 나라의 경제는 어떤 상황을 맞이했을까?

2008년 이후의 미국과 유럽, 1990년 이후의 일본, 1929년 이후의 미국 등, 부동산 시장의 폭락이 초래한 상황은 어느 나라나 극심한 혼란과 고통으로 비슷한 풍경을 보였다.

더욱이 현대에는 부동산 시장과 금융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그래서 부동산 시장의 폭락은 곧 금융 시장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은행 대출의 50% 이상이 부동산 담보대출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담보물건(부동산)의 가격이 하락하면 곧 기존 대출의 환수와 신규 대출의 중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숱한 가계와 기업의 파산을 불러오게 되고 경기는 급락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다. 우리가 20년 전에 직접 경험했던 것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급락 사태를 겪은 바 있다. 그때 우리는 과연 과거의 폐습을 청산하고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창조해낸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던가? 당시 국민들의 삶은 어떠했는가? 필자 역시 그 무렵 무수한 사람들이 겪었던 것처럼 실직을 경험했다. 그때 온 국민을 덮쳤던 절망은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생생하다.

부동산 대폭락이 발생했던 국가의 경험과 금융 시장의 논리를 정리해보면, 크게 세 가지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이 점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겠다.


건설업종의 부진

미국 부동산 폭락의 시사점

부동산 폭락기에는 주택을 짓는 동안에 계속 가격이 떨어지니, 새로 건설해 팔려는 사람이 바보이다. 이에 따라 주택 수요와 공급 모두가 극도로 위축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미국의 경우 금융위기 직전에는 신규 주택 공급량이 연250만호 수준이었는데, 위기 직후부터 급락하기 시작하여 100만 호 미만으로 폭락했다. 2006년 이전까지는 과열 양상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주택 공급량이 평균의 절반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당시 미국의 주택가격은 약30%하락 했는데 주택 공급량은 60% 감소했다. 쉽게 말해 전국적으로 주택 건설이 거의 멈춰버린 것이다.

건설투자가 30% 줄면

한국이라고 사정이 다를까? 부동산 가격이 대폭락하면 당연히 주택사업은 대침체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런데 건설투자는 GDP 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최근 한국의 GDP 대비 건설투자의 비중은 14%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투자량이 30%정도만 급락하더라도 경제성장률은 지금의 2%대에서 마이너스로 떨어져버릴 것이다.

게다가 주택 관련 사업은 단순히 건설투자량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주거는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식주 중 하나가 아닌가. 주택이 한 채 건설될 때마다 가구와 가전이 소비되고, 이사와 도배 같은 서비스도 함께 소비된다. 한마디로 건설산업은 전후방 연관 효과가 매우 큰 분야이다. 따라서 건설이 무너지면 이를 둘러싼 전후방 산업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부동산 폭락은 건설업의 부진뿐 아니라 금융위기를 불러온다. 다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살펴보자.

부의 재분배 악화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해진다. 그러나 대폭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와는 다르게 말한다. “부동산이 폭락하면 서민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는 논리는 말도 안 된다.”고 한다. 주택가격이 폭락할 경우, 가장 피해를 보는 측은 오를 때 가장 이득을 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다주택자가 피해를 보지, 무주택자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는 논리이다. 오히려 무주택자에게는 집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아니냐고 말한다. 선대인, 심영철의 부동산 대폭락 시재가 온다의 한 대목을 보자.

자기 집이 없는 42%의 무주택 서민이 집값이 떨어진다고 해서 피해를 본다는 말인가? 그리고 집값이 거의 오르지 않는 지역에 사는 30%도 집값 하락으로 인한 피해가 거의 없다. 집값이 많이 올랐던 지역의 주택 소유자라도 원래 자기 집에 살던 사람들 20% 정도는 실질적으로 피해가 없다. 오를 때 기분이 좋았다가 내릴 때 제때 못 팔았던 것을 후회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정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투기를 일삼거나, 거기에 편승했던 사람들 10% 정도다. 그 가운데 특히 무리하게 빚을 얻어 다주택을 소유했던 사람들에게 피해는 집중될 것이다.

집값이 떨어지면 집 있는 사람들이 힘들지, 집 없는 사람들이 힘들 게 있겠느냐는 말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사실 대폭락론을 주장하는 사람중에는 집 없는 서민들도 많을 것이고, 지금 가격을고는 집을 사기가 너무 어렵지만 집값이 대폭락한다면 좀 싸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도 섞여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하지만 집값이 폭락하는 사태가 터졌는데, 집 없는 사람들이 그냥 강 건너 불구경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실제로 집값이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가장 큰 피해는 중산층과 빈곤층이 입게 된다. 고소득층은 오히려 이 틈을 타서 부를 더욱 늘릴 공산이 크다.


미국 저소득층의 비극

과거 미국 대공황 당시 토지가격은 급락했고 대부호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농민들이 빚더미에 눌려 헐값에 내놓은 토지들을 사들였고, 이에 따라 토지 소유의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었다. 경작할 땅을 잃은 농민들은 일자리를 찾아서 미 대륙을 유랑해야만 했다. 이런 모습이 반드시 80년 전의 일만은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미국에서는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부동산 가격은 33%가 급락했고, 총자산과 소비는 각각 약 7조 달려가 감소했다. 당시 미국의 GDP가 약 14조 달러였던 점을 고려하면, GDP50%에 해당하는 자산이 감소한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미국의 압류 주택 수는 이후 600만 호까지 불어났다.

그렇다면 600만 호의 집에서 쫓겨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 푼도 없는 사람들은 노숙을 해야 했고, 대부분은 다시 임대주택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미국의 자가점유율은 200869%에서 201265%까지 떨어졌다. 전체 미국 가계의 4%가 자기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 새로 임대주택을 들어간 것이다. 이는 임대주택의 수요를 늘려 임대료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경기침체로 가계소득은 줄어들고, 살던 집에서 쫓겨난 데다가 임대료까지 오르게 되어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과연 상류층이겠는가? 아니면 빈곤층이겠는가?

심화된 불평등과 양극화

물론 슈퍼 리치들도 주가 하락으로 인해 자산이 감소하기도 했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도 수십억 달러의 평가손실을 입었고, 상위 0.1%의 평균 소득도 연간 1,100만 달러에서 600만 달러 수준으로 절반 가까이 하락하기도 했다.

그런데 금융위기 이후에는 불평등이 더욱 극적으로 커졌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중산층과 상위 1%의 순자산(부채 제외)격차는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에는 181배였으나 2010년에는 무려 288배로 커졌다. 결국 중산층은 몰락하고 부유층은 부를 더욱 확대했던 것이다.

미국의 최상류층은 일시적으로 주가 하락을 겪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자기 집에서 쫓겨난 것도 아니고,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슈퍼 리치는 더욱 부자가 되었다. 반면 빈곤층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미국으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임차가구의 소득 대비 임대료 부담비율(PIR,rent to income ratio)200126.9%에서 200729.3%,200930.3%로 증가했다. 물론 그 부담은 저소득층에 더욱 집중되었다. 소득 1분위 소득의 무려 63.6%를 임대료로 지출했고, 최저 빈곤선 이하 가구는 71%를 지출했다. 임대료를 내고 나면 그야말로 먹을 것을 살 돈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홈리스가 되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건조한 숫자로 표현되거 있지만, 미국인들이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가? 전체 소득의 50% 이상을 임대료로 지불하는 임차 가국가 전체의 1/4 이상이다. 반면 빈곤층이 살 수 있는 저렴한 주택의 공급은 수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의 소득 대비 임대료 부담 비율은 2014년 기준으로 20%정도이다. 미국이 30%대 인것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그러니 미국 서민들이 얼마나 힘든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수치상으로 보면 주거비 부담이 한국보다 50%나 더 크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 주택에서 쫓겨나서 가혹한 임대료 부담에 시달리는 서민층이 다시 재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한번 밀려나면 끝이라는 말이다.

부자들은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도 많지만 소득도 높고 현금성 자산도 많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한 시점은 부자들이 부동산을 값싸게 사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반면 대출을 끼고 집을 산 서민층은 집값이 폭락하면 자산의 대부분을 잃게 되고, 대출이 만기가 되면 이자 부담등으로 연장이 힘들며, 대출금이 연체되면 즉각 압류가 들어온다.


위기를 버틸 수 있는 것은 누구인가?

부동산 대폭락기는 모두에게 힘든 시기이다. 그러나 그 고통의 크기는 소득에 반비례할 것이다. 소득이 많은 부자들이야 당연히 버틸 수 있지만, 빈곤층은 하루하루의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런 광경을 이미 IMF 외환위기 때 목격한 바 있다. 온 나라의 자산이 무너져내리는 상황에서 나는 살아남아 헐값에 아파트를 건질 수 있다.”라는 계산은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거품이 빠지고 건강한 경제가 이루어진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장기적이라는 기간이 얼마나 길지는 아무도 모른다.(일본은 지금 30년 가까운 세월을 버티고 있는 중이다.)하지만 우리는 매일 하루 세 끼의 밥을 먹어야 하고, 매일 잠자리에서 잠을 자야 살 수 있다. 단기적으로라도 경제적인 충격이 온다면 생물학적 생존마저 위태로울 수 있는 그런 존재이다.

그러니 단기적인 고통을 참고 버티면 장기적으로 건강한 경제를 만들 수 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무책임한 소리이다. 또 실제로 그런 경제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에 취약 계층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통을 감내하며 버텨야만 한다. 그들이 극도의 빈곤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면, 이후에 경제가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허무한 소리일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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