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주택 자가보유율을 어떻게 높였나?

개인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임대보다는 자기 집에서 사는 것이 좋은 일이라면, 정부 부동산 정책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자가보유율을 높이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경제적 불평등이 매우 중요한 이슈인데, 자가보유율이 높아진다면 불평든 문제도 많이 완화될 것이다. 각자 보유한 집값은 차이가 나겠지만, 그래도 자기집이 있고 없고의 차이보다야 크겠는가?


미국의 자가보유율의 장기추세

실제로 국민의 주택 보유 증가를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 어젠다로 삼아 상당히 성공을 거두기까지 한 나라가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끝내 파국적인 실패로 끝나버렸다. 바로 미국이다. 인도 중앙은행 총재였던 라구람 라잔 교수는 그 과정에 대해 폴트라인이라는 책에서 잘 묘사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은 인류 역사상 길이 남을 대호황을 경험했다. 빈부격차도 크게 완화되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열심히 일해서 자기 집을 마련하고 경제적 안정을 이룰 수 있었던 시기였다. 1950년대의 미국은 높은 경제성장률, 낮은 빈부격차, 낙관적인 사회 분위기가 결합된 그야말로 풍요로운 제국이었다. 그 무렵 미국의 자가보유율은 40%대에서 60%대까지 급등했다. 그리고 이후 거의 30년 이상 64%선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이처럼 자가보유율이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는 것은, 미국 경제 시스템에서 국민의 부동산 보유에 관한 최적점을 찾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1990년 중반 이후 클린턴 행정부 때 변화가 생겼다.

미국은 1990년대 중반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동안 미국을 괴롭히던 쌍둥이 적자(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적자)가 거의 해결되고, 경제성장률이 4%대로 높게 유지되었으며, 실업률이 완전고용에 가까울 정도로 낮아지는 등, 미국 경제는 신경제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렇지만 대다수 미국인들은 이러한 화려한 경제적 성과의 과실을 향유할 수 없었다. 바로 부의 집중화 현상 때문이었다. 실질임금의 증가는 상위 5% 이상에 집중되었다. 최상류층은 주가 상승 등으로 자산소득이 크게 증가하여 과거보다 훨씬 많은 부를 챙길 수 있었지만, 중산층 이하의 계층은 경제성장과 과실로부터 계속 소외되었다. 당연히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었고 정치권은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했다.


빈부격차가 심해진 미국의 정치적 선택

1990년대 이후 미국의 빈부격차가 그처럼 급격하게 심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미국의 최고소득세율은 한때 90%까지 육박했지만, 레이건 정부 이후로 28%까지 급격히 인하되었다. 기업은 기술발전에 따라 소수의 고급 노동력을 필요로 했으며 이에 따라 저숙련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또한 레이건 정부 이후 진행된 반노조 정책 때문에 노동자 계급의 임금 협상력이 크게 떨어졌다. 아울러 과거 대공황 시절의 반경쟁정책으로 임금상승이 억제되었는데, 갑자기 규제가 완화되면서 소수 노동자들의 임금이 크게 상승했다.

이밖에도 여러 원인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여러 학설 중에서 가장 큰 지지를 얻는 것은 역시 숙련편향적 기술 진보설이다. 고급 교육을 받은 소수의 고급 노동자들만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사회로 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 주장이 맞다면, 미국 정부는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교육수준을 높였어야 했다. 또한 만약 너무 낮은 소득세율이 문제라면 소득세를 올려야 했고, 반노조 정책이 문제라면 노조친화적 정책으로 바꾸어야 했으며, 갑작스러운 규제완화가 문제라면 정부 규제를 좀 더 합리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들은 각기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교육 체계를 바꾸는 개혁은 정당마다 개혁 방향에 대한 의견이 달랐고, 개혁의 효과가 언제 나타날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소득세 인상 정책은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미국은 국민의 71%가 빈곤층도 얼마든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이다. 그래서인지 부자에게만 증세를 하더라도 중산층들까지 자신들에 대한 증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기에, 소득세 인상 정책을 시행하는 데에는 정치적 부담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4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가 빠르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저항이 적은 대책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바로 대출 확대 정책이었다.

오너십 소사이어티

대출 확대 정책은 빈곤층이 적은 소득 때문에 불만이 많다면,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해주면 되지 않느냐는 매우 단순한 대책이었다.

대출로 집을 사게 되면 부유층처럼 부동산 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대출은 갚아야 하지만 그것은 미래의 일이다. 미국 정치권은 대출 확대 정책을 환영했고, 이 정책은 국민들에게 즉각적인 효력을 발휘했다.

1995년 클린턴 대통령은 국민 주택 보유 증대 전략과 관련한 보고서 서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해 나는 관련 장관들에게 이번 세기가 끝날 즈음, 미국 역사상 주택보유율이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계획을 개발해달라고 요청했다. 주택보유율이 늘어나면 미국 가정과 공동체의 힘이 커질 것이고, 미국 경제의 힘도 강화될 것이며, 미국의 위대한 중산층도 따라서 증가할 것이다. 미국 근로계층의 가정이 주택 보유에 대한 꿈을 다시금 불태우도록 만드는 정책을 통해, 우리는 21세기에 미국을 훨씬 더 부강한 나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이러한 정책기조는 의회에서도 환영을 받았다. 이에 클린턴 행정부는 주택금융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을 확대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폈다. 이후 공화당의 부시 정부는 클린턴 정부의 거의 모든 정책을 부정하는 ABC(anything but clinton)정책을 시행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주택금융 확대 정책만큼은 충실하게 받아들였다. 부시 행정부는 2기 집권 때부터 아예 정권의 핵심 슬로건으로 오너십 소사이어티라는 문구를 내걸고 이를 추진했다.

오너십 소사이어티 어젠다는 부시 정부의 핵심 경제공약이었기에 그 내용도 매우 방대했다.

20049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발표된 주요 내용을 보면 첫째, 소비·저축·투자에 관한 개인퇴직연금 계정 및 의료저축 계정의 확대, 셋째, 감세의 영구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부시 정부는 부동산의 자가소유를 늘리기 위해 모기지(주택담보대출)이자에 대해 세액공제를 해주고, 연방정부의 주택 관련 예산 집행을 주정부에 좀 더 위임하고 토지 관련 규제를 완화했다. 조지 부시는 2004617일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소유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미국 미래의 중요한 한 부분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국민의 주택 보유가 더 늘어나면 경제의 활기도 더 커질 것이고, 더 많은 국민이 미국 미래의 중요한 부분을 함께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의 이 연설은 10년 전 클린턴 대통령의 보고서 서문과 거의 비슷한 내용이지만, 주택보유율 증대 전략을 훨씬 더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연설 이후 가계대출 확대 정책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이에 따라 미국 부동산 시장은 활활 타올랐다. 1995년 무렵부터 2006년까지 미국 정부는 국민들의 주택보유율을 높이겠다는 목표 아래 초당적으로 꾸준히 협력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 정부는 10년에 걸쳐 주택보유율 상승 정책을 폈고, 결론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의 주택보유율은 1960년대부터 1995년 무렵까지 거의 35년 동안 약65%를 유지해왔는데 이후 10년 동안을 거치며 69%까지 상승했다. 이 정책으로 미국 가정의 4%가 추가적으로 자기 집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무려 30년 이상 꼼짝도 하지 않았던 주택보유율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의 연설 이후 3년 만에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이에 따른 대량실업 사태를 겪어야 했다. 미국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2015년 현재 주택보유율은 63.7% 수준으로 복귀해버렸다. 결과적으로 클린턴과 부시 대통령의 장담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진행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주택보유율 상승 정책의 위험

한 국가가 주택보유율을 높이려면 두 가지 방법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가계소득의 확대와 주택가격의 안정이다. 주택가격이 안정적인데 가계소득이 증가하면 집을 사려는 사람이 늘게 마련이다. 이것은 가장 기본이자 정석이라고 할 만한 방법이다. 하지만 문제도 있다. 가계소득을 늘리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다.(사실 소득이 늘어 나기만 한다면야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래서 미국은 두 번째 방법이 필요했다.

둘째, 미국 정부가 실천한 바와 같은 대출 확대 전략이다. 주택은 비싼 상품이므로 구입 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금융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대출 확대 정책을 펴면 효과가 즉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 쉽고 빠른 방법에는 대가가 따른다. 바로 주택가격의 상승이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 주택가격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80% 상승했다. 주택가격이 이처럼 크게 상승하자,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이 점점 더 많이 필요하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과유불급이다.

은행들은 처음에는 신중하게 우량고객의 대출을 늘렸다. 이것이 바로 프라임 대출이다. 그런데 상환 능력이 충분한 사람들이 어지간히 대출을 받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은행에는 돈이 넘쳐났다. 정부의 보증은 확실했고, 온갖 신기한 금융기법들이 속속 등장하면서부터 은행들은 점점 과감해졌다. 그래서 비우량 고객들에 대한 대출까지 점차 늘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대출이다.

실제로 미국 시카고 지역의 대출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살펴보면, 2002~05년 저소득층 밀집 지역의 대출 증가 속도가 고소득층 지역보다 2배나 높았다. 특히 유의할 점은 저소득층 지역의 가계소득이 감소하는 와중에도 이처럼 대출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금융기관들이 대출자의 소득에 따라 대출액을 결정했는데, 평소의 보수적인 행태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2006년 말 잔액 기준으로 빈곤층에 대한 대출은 약12천억 달러에 달했다. 다른 저신용 대출인 홈 에쿼티 론 까지 합치면 24천억 달러로 추정되기도 한다. 경제규모가 세계 11위인 한국의 2016년 연간 G에 가 약 14천억 달러이니, 거의 한국의 1GDP 에 해당하는 엄청난 대출이 미국 저소득층에게 뿌려진 것이다.

당시 미국의 모기지 대출 잔액은 총 10조 달러였으며, 빈곤층에 대한 대출은 약 12천억 달러였다. 즉 빈곤층 대출은 미국 주택담보대출 전체의 약 12%였고, 2006년 말 기준 미국 가계 순자산인 56조 달러의 고작 2.1%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부채가 전부 부도가 난 것도 아니다. 2006년 최고조에 달했을 때, 서브프라임 채무의 연체율은 약13%였다. 미국 전체로 보면 약 1500억 달러 정도의 부채가 연체 상태에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첨단 금융기법으로 엄청나게 복잡해진 금융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고, 금융기관들은 패닉에 빠져버렸다. 리먼 브라더스를 비롯한 수많은 금융기관들이 파산했고,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 규모의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이후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대폭락으로 약10조 달러 이상의 자산이 허공으로 날아가버렸다.

정리하면, 미국 경제는 건실하게 잘 성장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 성과는 소수의 부유층에게만 집중되었고, 이에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정치권이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더 많은 대출을 제공하여 주택보유율을 높이는 정책을 실시했고, 10년 만에 주택보유율을 4%나 높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이루기 위해서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서브프라임 대출이 12천억 달러가량 공급되었고, 이는 미국 가계 순자산의 2%에 불과했지만 금융 시장의 핵심적인 상품으로 커졌다. 그리고 이 중 약 13%가 연체되었고, 이를 계기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결국 200만 호 이상의 주택이 압류되었다.

이것을 한 문장으로 더 요약한다면, ‘미국 가계 중에서 4%가 주택을 더 보유할 수 있게 하려다가, 미국과 세계 경제를 망하게 할 뻔하고 주택200만 채를 압류로 날려버린 사건이다.


한국은 자가보유율 유혹에서 자유로운가?

뉴타운 열풍이 남긴 상처

2000년대 중반 한국에서 뉴타운은 마법의 단어였다. 훨씬 쾌적한 집을 공짜로 얻을 수 있고, 거기에다 엄청난 돈까지 벌 수 있다는 환상이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뉴타운이란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에 따른 재정비 촉진사업이다. 원래 도시의 주거공간을 재정비하는 방법은 재건축, 재개발, 주거환경 개선, 도시환경정비 등 네 가지로 나뉜다. 뉴타운은 이 네 가지 방법을 모두 포괄하여 대단위로 개발하려는 방식이다. , 도시에서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소규모로 군데군데에서 진행되면 마구잡이 개발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크게 묶어 좀더 계획적으로 개발하자는 취지였다.

뉴타운 정책은 물론 취지 자체로만 보면 훌륭하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획이었고, 결국 엄청난 부작용을 낳고 사그라들었다. 뉴타운 열풍이 꺼진 지 거의 1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당시의 흉터가 서울 곳곳에 남아 있다.

뉴타운 사업의 실패 이유

뉴타운 사업이 대실패로 끝난 이유는 사실 너무 단순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뉴타운 사업지구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지정되어 시장이 도저히 이를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73~2002년의 30년 동안 서울 지역에서 주택 재정비사업이 완료된 면적은 총 1010였다. 그런데 2002~06년의 단 5년 동안 뉴타운 사업지구로 지정된 면적이 무려 2380에 달했다. 즉 지난 30년동안 서울 시내에서 벌어진 모든 재정비사업 면적보다 2.5배나 넓은 지역이 뉴타운 지구로 선정된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이 사업의 문제점과 실효성에 의심을 가져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 뻔한 숫자가 뉴타운의 태풍이 한참 몰아칠때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2002년 길음과 은평, 왕십리가 뉴타운 시범사업지구로 정해졌고, 2003년 한남·노량진 등 12개 지구가 2차 뉴타운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에는 장위·수색등이 3차 뉴타운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초기에 뉴타운 지구가 선정되었을 때는 즉시 가격이 요동을 쳤다. 은평구와 성북구 등 초기 뉴타운 지구의 아파트 가격은 1년 만에 20% 가까이 급등했다. 강북에 집중되어 선정된 뉴타운 지구 덕분에 이제 강남만큼 발전할 수 있겠다는 희망에 부푼 시민들은 2006년 선거에서 뉴타운 지구를 50개로 늘리겟다는 오세훈 시장을 뽑았다.

그리고 오세훈 시장은 당선된 이후 뉴타운 위험성에 대해 걱정하며 슬금슬금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공약과는 달리 추가 뉴타운을 10개 이하로 최소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2008년 총선에서 뉴타운 바람이 다시 불붙었다. 서울의 48개구 중 29곳에서 뉴타운 공약이 나왔고, 여당은 서울에서만 40곳에서 승리했다. 한마디로 뉴타운 선거라고 불릴 만한 선거였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추가 뉴타운 지정은 절대 없다.”며 못을 박았고, 실제로도 추가 지정은 없었다. 한마디로 뉴타운을 둘러싼 거대한 정치 사기극이 벌어진 것이다.

사업 중단, 그후

그 결과는 참혹하다. 전체 뉴타운 구역의 25%가 시작도 하지 못하고 해제되었다. 그러나 그냥 사업이 중단되는 것으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서울시가 2013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해제된 지역의 건물 중 75%1,2층 단독주택이고, 이 중에서 30년 이상 경과된 노후·불량 건축물의 비율이 83%에 달했다. 달리 말해 지역이 슬럼화되었다는 뜻이다. 재정비가 필요한 지역이나 원래 낡은 주택들이 모인 곳인데, 10여 년 동안 개발 예정지라는 이유로 주택을 거의 유지·보수하지 않았으므로 노후화가 더욱 가속화된 것이다.

게다가 뉴타운 해제지구는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비중이 평균 15%에서 최대 23%로 서울시 평균에 비해서 높고, 세입자 비율이 무려 70%까지 된다. 뉴타운 사업이 실제로 가장 필요한 지역들이 가장 큰 상처를 남기고 해제되어버린 것이다. 가난한 지역이다 보니 뉴타운 사업비를 확보할 방법도 없었고, 더욱 가난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진행중인 곳은 괜찮은가?

그렇다면 현재 사업이 진행중인 곳은 괜찮을까? 그것도 아니다. 현재 뉴타운 사업 구역 중 완료된 곳은 전체 지정 구역의 15%40개 구역밖에 없다. 남은 157개 구역 중에서 단 15곳에서만 공사가 착공되었고, 사업 추진 주체가 없이 구역 지정만 된 구역이 22, 조합 설립 전단계인 추진위가 구성된 구역이 27곳이고, 조합이 설립된 구역이 28,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구역은 36,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은 구역은 19곳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진행이 지지부진하다. 이 와중에 주민들의 반목은 더욱 심해지고 각종 소송이 난무하고 있다. 오랜 시간 함께해왔던 지역공동체가 뉴타운을 둘러싸고 대대적으로 해체되어버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또한 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된 곳이라 해도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뉴타운은 소형주택을 밀어내고 중대형 아파트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보니, 주택 공급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택수가 줄어드는 결과가 생기기도 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이 사업을 통해 총 136,346호의 주택이 철거되고 67,134호의 주택이 신축될 예정이라고 한다. 새로 지어지는 주택은 쾌적하겠지만 그만큼 비싸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원래 이곳에 살던 원주민이라 할 수 있는 서민층이 대부분 밀려나게 된 것이다. 길음 4구역의 경우 재개발 후 약 15.4%만이 해당지역에 정착을 했으며, 나머지 84.6%의 원주민들은 정을 붙이며 살아온 동네를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만 한다.

이처럼 신중하지 못했던 뉴타운 공약을 통해 정치는 정치대로 왜곡되고, 부동산 시장은 부동산 시장대로 망가져버렸다. 그나마 미국처럼 거대한 금융위기로 발전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자위해야 할까? 뉴타운이 거대한 실패로 끝났으니, 이제 다시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은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필수재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드라마틱한 수익률을 보여줄 수 있는 투자 자산이기도 하다. 어떤 정치권력이든 부동산을 자기의 수단으로 쓰고 싶은 욕망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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